개그맨 지원 경험담 [실화/유민상/유세윤] KBS 20기 공채

 KBS 20기 공채 개그맨 지원 경험담 :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릴 적 유난히 개그맨 흉내를 잘 내는 동네 아낙네들을 모셔놓고 꼭 말을 죽이는 약장수처럼 상대의 넋을 빼놓고 말한 게 나였다. 학창시절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깊어지는 장난기(부모 앞에서)와 친한 친구를 학교 옥상으로 데려가 미니 공연을 펼쳤다.

하지만,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반에서 매우 조용한 아이였다. 해마다 담임선생님들 중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난 그저 엄마 말처럼 안방에서 호랑이를 잡다, 즉 아는 사람만이 아는 개그맨이었다. 이런 내가 대학 졸업 직전 교수님의 진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도 다른 학교 교수들에게.

“진이야, 내년에 개그맨 시험 볼 생각 없니?” 네가 방송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건 알지만 개그맨이 더 어울릴 것 같아. 이분은 당시 방송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가였다. 또 내가 지원한 KBS 공채 개그맨 시험 면접관이기도 했다.

모르겠어. 내 안에 숨겨진 진짜 속마음이 밝혀졌는지는… 부모님이그렇게소원을말씀하실때는잘들어야검증된분의한마디에지원해볼게요.라고대답한걸보면요.

그렇게 20기에 신청서를 냈다. 1차 서류심사는 통과! 2시부터 실기다! 솔직히 한 방에 이기리라고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교수님이 면접관 자리에 앉으실 거라는 걸 알았지만 내 합격 여부와 그분은 별개니까. (역시 공정한 공영방송) 그리고 지원자 대부분이 대학로에서 몇 년 동안 밥 먹듯 개그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다. 인생을 건 그들과 겨우 한두 달 연습하고 있는 내가 상대가 될까.

이런 상황을 잘 알면서도 교수를 하겠다고 한 것은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예전부터 원하셨기 때문에 친한 지인의 권유로 나도 도전하고 싶었다. 떨어져도 모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교수님의 한마디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당연히 불합격이 된다고 생각해서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했다. 하면 할수록 내 개그는 전혀 재미없었어. 웃기는 것도 한두 번이었고 반복되면 펭귄들도 울 정도로 썰렁해졌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 유행하는 병팔이의 일기를 내 스타일로 바꿔 말한 개그였어.

시험 당일 여의도까지 가는 내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내 생애 첫 청심환은 그때 먹은 것이다. 대기실에 도착해 심장을 달랬다. 하지만 많은 지원자와 함께 있어 더욱 긴장했다. 지원자들은 남자들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각자 준비한 개그를 연습하고 있었다. 나는 뒷좌석에 앉았는데 옆의 일란성 쌍둥이가 서커스 느낌으로 준비해 와 깜짝 놀랐다. 그렇다, 이들은 개그맨 이상호 이상민이었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혼자 중얼거린 거구, 지금의 유민상이다. 20기 합격자를 보면 쟁쟁하다.

유민상 신봉선 박휘순 정경미 김재욱 쌍둥이 개그맨 등.

자, 이제 부를 열 분은 준비하세요.

열 명씩 (내 기억으로는) 면접실에 들어갔다. 나란히 자리에 앉은 나는 앞에서 개그를 하는 지원자들의 연기를 보려 했다. 하지만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알 수 없다는 듯이, 금방 오는 내 차례를 만날 수가 없었다. 이때 들리는 힘찬 남자의 목소리!

다음은 752번, 이진이 씨입니다.

개그맨 유세윤이다. 바로 앞의 기수인 그가 지원자 하나하나를 부르고 있었다. KBS2 개그콘서트에서 복학생으로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그가 내 앞에 있다니 내 이름을 불러주다니 신기했다.

면접이 끝났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슬프게도(?) 떨어졌다. 물론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연습 때보다 더 떨어져 가뜩이나 썰렁 개그를 재미없게 했으니. 종반에는 너무 재미없어서 나조차 창피하더라. 결국 춤으로 심사위원들을 웃겼다. 끝날 때쯤 조금이라도 웃겨주길 잘한 거 같아.

“교수님, 으윽” 죄송합니다 너무 못하시죠?보는 내가 부끄럽다. 마지막엔 좀 웃기지만 아예 그걸로 누르는 게 어땠어?

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

내게 코미디언 지원 경험은 여전히 존재다. 새로운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는 이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럼 다들 ‘뭐라고?네가?!라는 표정이다. 내 안의 재능을 미리 느끼라는 차원에서 밝히는 것이라고 해두겠다. 결과와 상관없이 내 수많은 도전 중 가장 자랑스러우니까.(웃음)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이기 때문에 스스로 칭찬하고 싶다. TV를 볼 때마다, 코미디언을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마음 놓고 웃기려는 건 내 앞에 대본이 있다고 해도 쉽지 않으니까. 특히 KBS 공채 20기 출신이 나오면 내가 소환된다. 당신과 동기가 될 뻔 했는데.(미안해요)

_ 이 발자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