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다 신고 난 아스퍼거 증후군입니다-

 제목대로 책을 쓴 권 전 신고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자폐증의 일종으로서 특히 타인과의 관계 설정에 어려움을 겪는 질환이다. 책에서는 작가가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열되어 있지만, 대부분 남의 말 속에 숨은 의도를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예를 들어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적당히라는 말의 본뜻은 그곳의 분위기 파악을 통해 측정할 수 있지만 메타언어뿐 아니라 조직의 분위기도 파악할 수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들은 적당히의 적당함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작가는 직장에서 번번이 해고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도 작가는 마흔 살이 되어서야 자신이 아스퍼거증후군임을 알았다고 한다.

글을 읽어 보니 그것도 그럴듯하다. 증세의 상당 부분은 많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 직장인은 작가처럼 먹고살기가 힘들지 않은가. 스트레스가 지나치면 누구나 아스퍼거증후군 환자처럼 실수를 반복하거나 동료나 상사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고 싶어질 것이다. 물론 아스퍼거 증후군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흥미롭게도 나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장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내가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님을 알게 된다. 작가처럼 꾸준히 일할 수는 없다.

이는 아스퍼거증후군이 장점을 잘만 활용하면 현대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작가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많이 극복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메모를 해 애매한 메타언어를 상대로 재확인하는 방법으로 현재의 직장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사회이기에 아스퍼거 증후군이 질환이 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정신이상자들이 근대 이후 특정 병명을 얻어 사회로부터 분류, 격리되는 문명의 그림자를 보여줬다. 아스퍼거증후군 역시 근대 이전 농경사회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주위에서 좀 유별난 성격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일을 해서 가정을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되는 질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와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의 메타언어를 파악해야 하고, 복잡다단한 것을 배워야 생존이 가능한 세상이다. 푸코가 예로 드는 정신이상자처럼 예전에 정상이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정상이 됐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경험한 일화는 단조롭고 정서가 결여되어 있으며, 이것 또한 아스퍼거 증후군의 영향인가 생각된다. 그러나 동시에 꾸밈없는 글이 솔직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숱한 좌절을 딛고 살아온 작가들을 경외하게 된다. 책에서 아스퍼거증후군은 경계가 모호한 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실제로 아스퍼거증후군 환자이면서 자신과 지인들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일화는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사회적 배려의 한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